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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위구르의 역사 (1)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인 위구르족은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타림분지를 비롯한 광대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고, 744년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오르콘 위구르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점차 그 세가 약해져 1949년부터 현재까지는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이다. 최근 간헐적인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2009년 7월부터는 수도 우루무치에서 유혈 소요사태가 벌어져 현재까지도 통제를 받고 있다.

위구르족은 유목민족인 가오체(高車, 고거)족의 후예이다. 가오체족은 정령(丁零), 칙륵(敕勒), 철륵(鐵勒), 적위(翟魏)등으로도 불리우는 고대 시베리아 계통의 민족이다. 천막을 옮기기 위한 소가 끄는 수레에서 그 이름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몽골고원에 웅비하였으며, 흉노와 유연의 지배를 받았다. 위구르족은 가오체족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구르가 독자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수대에 이르러서이다. 타림분지 일대에 거주한 토카라(Tocharians, 月氏)족 역시 위구르의 조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주로 바이칼호 남쪽 협곡과 예니세이 강 일대에 사는 알타이계의 유목민족이었다. 농업과 예니세이강 유역의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금속문화를 발달시킨 이들은 흉노에 복속되어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유연과 에프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546년 퇼레스(옛 가오체)는 유연에 반란을 계획하여 독립하지만, 역시 유연 지배하에 있었던 투르크(돌궐)족에 배신당하고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 사건은 이후 투르크와 퇼레스(鐵勒, 철륵)간의 원한으로 남아 오랬동안 돌궐제국을 괴롭힌다. 중국의 사서에는 처음으로 위구르가 등장하는데, 바이칼 남쪽 지역 10,000호의 작은 부족이라고 나온다.

627년, 퇼레스 부족연맹이 와해되자, 위구르는 선비족의 수나라와 연합한 타르두스(薛延陀, 설연타) 연합에 참여하며, 돌궐을 꺾고 독립을 쟁취한다. 630년 당 태종이 동돌궐제국에 결정적 타격을 주어 동돌궐제국이 멸망하자, 위구르는 타르두스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연합 내에서 설연타 다음의 지위를 점유하였다. 647년 다시 당나라가 타르두스를 격파하고 기미지배 체제를 성립하고, 위구르는 그 속에 편입되어 정치세력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위구르의 수령인 퀼뤽 엘테베르 토미도는 당나라로부터 한해도독에 임명되고, 카간을 자칭하여 유목세계의 중심지인 외튀켄 산지를 차지한다.

682년, 당나라 측천무후의 재위기간에 북방의 장악력이 약해진 사이 후돌궐이 세워진다. 687년 후돌궐이 막북을 차지하자, 위구르는 이곳에서 쫓겨나 당나라에 귀순한다. 이후 돌궐의 세력이 강해지자 727년 위구르는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후돌궐 제국은 734년 빌케가한(毗伽可汗)의 사망 이후 그 세가 기울게 된다. 위구르는 중국 동맹국들과 연합한 일련의 반란을 일으킨다. 일시적으로 바스밀이 세력을 차지하지만, 위구르는 바로 다른 세력을 제압하고 몽골고원을 차지한다. 당나라에 안사의 난에 위구르가 지원을 해주고 그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아 세력이 커진 것이다. 위구르는 9개 부족이 연합한 토쿠즈-오구즈(Toqus-Oghuz)라는 부족연맹을 통합하여 새로운 동맹세력, 온 위구르(On-Uygur)의 지도세력이 된다. 744년, 위구르는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