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사

피로스 왕 연대기 (3) 에페이로스 왕위 계승전

피로스는 기원전 319년 아이아케데스와 테살리아 여성인 프티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아케데스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생모인 올림피아와 사촌지간이므로 피로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육촌뻘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피로스가 두살이 되던 기원전 317년에 아이아케데스가 마케도니아로 진군한 사이 에페이로스인들은 아이아케데스를 폐위하고 마케도니아의 섭정이었던 카산드로스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피로스의 가족들은 어린 피로스를 데리고 아드리아해 동쪽 해안 왕국 일리리아의 글라우키아스 왕에게 의탁한다. 글라우키아스 왕의 부인은 베레아였는데 몰로시아 아이아키다이 왕가의 여성이었다. 아버지였던 아이아케데스는 기원전 313년 카산드로스의 지배에 지친 에페이로스인들에 의해 다시 왕으로 옹립되지만 카산드로스가 즉시 동생 필리포스에게 군대를 맡겨 에페이로스를 공격한다. 두차례의 패전 후 아이아케데스는 사망하고 에페이로스는 다시 마케도니아의 지배 하에 들어간다.


어려서 글라우키아스 왕에게 맡겨진 피로스는 부인인 베레아에 의해 키워진다. 기원전 306년 열두살이던 피로스는 글라우키아스 왕의 도움으로 에페이로스의 왕위를 되찾는다. 하지만 불과 4년 뒤인 기원전 302년에 카산드로스의 공격으로 다시 왕위를 잃는다. 에페이로스에는 꼭두각시인 네오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즉위하고 피로스는 당시 카산드로스와 적대하던 아테네의 해방자, 데메트리오스 1세 밑에서 장교가 된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피로스의 매부였으며 카산드로스로부터 아테네를 해방시킨 군주이다. 입수스대전에 나란히 참전한 데메트리오스 1세와 피로스는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기원전 298년 데메트리오스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협정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에 볼모로 보내지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피로스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자신의 양녀인 안티고네(이집트 베레니케 1세 여왕의 딸)와 결혼시킨다. 이지중해의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든든한 재정적, 군사적 후원을 등에 업은 피로스는 기원전 297년 에페이로스의 왕위에 복위한다. 복위 초기에 네오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하지만 에페이로스 백성들은 네오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괴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에 지쳐있었으며 또한 그의 잔인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피로스는 네오프톨레마이오스 2세를 식사에 초대해 살해하고 단독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대에서부터 험난한 과정을 거쳐 에페이로스의 왕권을 장악한 피로스의 나이는 스물네살, 아킬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피를 이어받은 피로스가 자신의 능력을 펼칠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