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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산타클로스의 유래

성 니콜라우스(Saint Nicholas)는 현재의 터키인 소아시아 리키아 파타라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이를 모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선 활동에 사용하고, 자신은 신부가 되었다.
미라(Myra)의 주교가 죽고 마땅히 주교가 될 만한 인물이 없자, 다른 지방의 주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자 "내일 아침 가장 먼저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주교로 세워라"라는 하늘에서의 음성이 들렸고, 그 날 미라에 찾아온 니콜라우스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참배하였고, 그래서 미라의 주교가 되었다.
303년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박해하였고, 이때 니콜라우스도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탄압받는 교인들을 석방하였다. 니콜라우스도 이때 석방되어 이후 다시 선교 활동에 전력을 기울인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예수를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Arius) 파의 성직자를 때려서 투옥되었다. (이후 아리우스 파는 이단으로 규정되어 쫓겨난다.) 감옥에 갇힌 니콜라우스에게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성서와 오모포리온을 건네주었고,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그를 석방하였다.
니콜라우스는 그의 교구에서 자선 사업을 더욱 크게 확대하였으며, 항상 돈이 부족해 성직자들이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날, 가난한 집안의 세 딸이 결혼 지참금을 준비할 수 없어서 사창가로 팔려갈 위기에 처하자 밤중에 남 몰래 창문으로 황금주머니를 던져주어 이들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틀은 창문으로 던졌는데, 마지막 삼일째에는 창문이 닫혀있어서 어쩔 수 없이 굴뚝으로 황금주머니를 던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행운이 자신에게도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굴뚝에 양말을 걸어두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성 니콜라우스의 축일에는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생겨났다.
지방 관리인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를 몰아세워 사형 위기에 처한 무죄한 죄수 3명을 구출하기도 하였고, 난파선의 승객을 구출하기도 하였다. 이교도들의 신전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341년 니콜라우스가 죽자 그의 명성은 곧 전 유럽에 널리 알려졌으며, 여러가지 전설들이 발전하였다. 콘스탄틴 황제의 꿈에 나타나서 정부관리 3명의 무죄를 알려 이들을 석방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1087년에는 그의 유해를 바리(Bari)로 이전하여 예배당을 세웠으며, 그 예배당에서 각종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예배당은 유럽 최대의 순례지가 되었다. 성 니콜라우스는 그리스, 시칠리아, 풀리아, 로렌, 러시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러한 니콜라우스의 전설은 라틴어로 성 니콜라우스를 뜻하는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 네덜란드어로 신터 클레스(Sinter Claes), 영어로 산타 클로스(Santa Claus)로 발음되면서 산타클로스의 전설로 변형되었다. 산타 클로스의 모습은 독일의 신인 토르(Thor)에 근거한다. 토르는 겨울에 크랙커와 그나셜이라는 이름의 염소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이 모습이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는 산타의 모습으로 변형된 것이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의 모습은 미국의 코카콜라 사에서 창작한 것이다. 1931년 판매량이 감소한 코카콜라는 이를 막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 코카콜라의 붉은 색을 산타클로스에 입혀서 백화점 홍보에 나섰고, 이 것이 세계적으로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