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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피로스 왕 연대기 (4) 마케도니아 쟁탈전

에페이로스의 왕권을 잡은 젊은 피로스는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인도에까지 원정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이 그의 사망 직후 붕괴되면서 난세가 시작되었고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들은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었는데 피로스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는 피로스를 사위로 삼았으며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꼈었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자신에게도 뛰어난 전략적 능력이 있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기원전 295년, 피로스는 암브라키아(현재의 아르타)로 수도를 옮기고 데메트리오스 1세와 전쟁을 시작한다. 피로스는 그의 아래에서 장교를 한 적도 있었고 입수스 대전에 함께 참전할만큼 사이도 좋았다. 무엇보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피로스의 매부였다. 하지만 피로스와 데메트리오스 1세는 둘다 자신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이어 대제국을 건설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의 불씨는 마케도니아에서 시작되었다. 카산드로스가 통풍으로 병사한 이후 왕좌를 계승한 장남 필리포스마저 통풍으로 바로 사망한다. 결국 둘째인 안티파트로스와 셋째인 알렉산드로스 사이에 왕위계승 분쟁이 일어났고, 둘다 각각 왕에 즉위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머니인 테살로니케가 셋째 알렉산드로스를 더 총애하여 상대적으로 밀리던 안티파트로스는 친어머니인 테살로니케를 살해한다. 데메트리오스와 피로스는 이러한 패륜에 분노하며 알렉산드로스와 동맹을 맺는다. 피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폭풍처럼 휘몰아쳐 안티파트로스 2세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이 전투를 통해 피로스는 아카르나니아와 암브라키아 일대를 수복한다. 뒤늦게 데메트리오스가 군사를 이끌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도착하지만 이미 피로스의 지원으로 자력으로 왕위에 오를 능력이 있던 알렉산드로스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했다. 양쪽의 지원군을 본 안티파트로스는 승산이 없어진 전쟁을 포기하고 북방의 리시마코스에게 가서 의탁하지만 세력을 잃은 패륜아가 반갑지 않았던 리시마코스가 그를 처형한다.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뒤늦은 데메트리오스의 원군이 반갑지 않았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암살하려고 한다. 만찬에 초대하여 독이 든 음식을 먹이려 했으나 밀고자가 상황을 모두 일러바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는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데메트리오스와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테살리아를 주겠다면서 회유했지만 데메트리오스는 이를 사양하고 오히려 알렉산드로스를 만찬에 초대한다. 분노할 줄 알았던 데메트리오스가 생각외로 차분한 것에 안도한 알렉산드로스는 만찬장에서 자신이 데메트리오스를 암살하려고 했던 그대로 암살당한다. 이렇게 카산드로스가 어렵게 일군 안티파트로스 왕조는 멸망한다.


데메트리오스는 기원전 294년 마케도니아의 국왕 자리에 오른다. 마케도니아에 출병하여 안티파트로스를 축출하는데 힘썼던 피로스 입장에서는 죽쒀서 개준셈. 야심이 넘치던 두 사람은 충돌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데메트리오스의 기세가 등등하고 피로스의 아내인 안티고네가 사망하면서 피로스는 일단 국내로 돌아온다. 피로스는 세력을 키우기 위해 정략결혼을 시작한다. 기원전 295년 시라쿠사의 참주인 아가토클레스의 딸 라나사와 결혼한다. 이 결혼의 지참금으로 피로스는 코르키라 섬을 얻는다. 또한 일리리아인과 바르딜리인의 수장의 딸과도 혼인한다. 데메트리오스도 그리스 전역을 무력으로 정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테살리아와 보에오티아에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데메트리오스는 이 반란의 배후에 피로스가 개입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데메트리오스와 결혼했던 피로스의 누나인 데이다미아가 죽고, 피로스의 여러 첩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라나사가 기원전 291년 마케도니아로 도망가 데메트리오스와 결혼한다.


충돌의 시작은 데메트리오스가 눈엣가시같던 아이톨리아를 정벌하면서 시작된다. 피로스는 우방이었던 아이톨리아를 돕기로 결정하고 출병한다. 피로스가 아이톨리아로 출병한 사이 데메트리오스는 에페이로스로 진격해 피로스가 없는 에페이로스를 유린한다. 피로스는 아이톨리아에 남아있던 데메트리오스의 장수인 판타우코스와 맞닥뜨린다. 판타우쿠스가 부하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일대일로 결판을 내자고 한 제의에 피로스가 응하고 피로스는 검에 한번 찔리지만 판타우코스의 허벅다리와 목부근에 상처를 입혀 승리한다. 기세가 오른 에페이로스 병사들은 후퇴하는 마케도니아 군사들을 추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피로스는 이 승리의 기세를 이어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지만 격퇴당한다. 비록 격퇴당했지만 필리포스 2세 이후로 패배를 모르는 군대라던 마케도니아 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변방 취급 당하던 에페이로스군이 마케도니아 심장부까지 진격한 것은 엄청난 전과였다. 에페이로스인들은 피로스에게 존경의 표시로 "독수리"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마케도니아 군사들 사이에서도 용맹한 피로스의 모습이 흡사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았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성장하던 데메트리오스의 세력을 견제하던 많은 왕국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압박을 가해온다.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가 침공해오고 프톨레마이오스도 에게해로 선단을 보내고 셀레우코스도 압박해온다. 피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 리시마코스와 연합하여 마케도니아를 선동하고, 데메트리오스는 반란에 의해 기원전 288년 마케도니아 왕위에서 물러난다. 그리스에는 안티고노스 고나타스를 대리인으로 남겨두고 그는 군사를 이끌고 동방으로 떠난다. 국내에서의 실패를 동방 원정으로 만회하려는 시도였지만 그의 군사는 훗날 셀레우코스에게 패배하고 데메트리오스는 포로가 되어 자결한다. 데메트리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피로스의 군대가 마케도니아로 진군하고 이미 그에게 공포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마케도니아인들은 싸움다운 싸움도 하지 못하고 피로스에게 정복당한다.


피로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르지만 동맹이었던 리시마코스가 분할을 요구하여 악시오스 강을 경계로 분할지배한다. 피로스는 기세를 올려 기원전 286년 테살리아를 침공하여 데메트리오스의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키려 한다. 그리스 지역의 일부만 남은 안티고노스 고나타스는 피로스와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테살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넘겨준다. 피로스는 명백한 헬라스의 패자에 등극한다.


하지만 기세를 올리는 피로스를 견제하던 리시마코스는 데메트리오스의 사후 견제할 세력이 없다고 믿자 피로스의 장수들과 백성들을 매수하고 선동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백성들이 종의 나라인 에페이로스의 왕을 섬긴다"라는 선동에 마케도니아 백성들은 동요했고 리시마코스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피로스를 쫓아낼 수 있었다. 결국 피로스는 에페이로스 지역으로 돌아갔고 리시마코스는 그리스 지역의 패자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