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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삼국지의 형주


후한 말기 형주는 7군으로 남양군, 강하군, 남군의 형북 3군과 무릉군, 장사군, 영릉군, 계양군의 형남 4군으로 나뉘어있었다. 총 117개의 현, 읍, 후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39만9394호, 인구 626만5952명의 거대한 지역이었다. 삼국지에서 형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황건적의 난과 십상시의 난, 동탁의 난, 관도대전 등의 삼국시대 초기의 굵직한 사건들이 대부분 관중이나 하북지역에서 벌어진 덕분에 전란을 피해 인재들이 평화의 땅 형주로 향했기 때문이다. 하북과 관중의 광대한 땅을 모두 차지한 조조와 달리 유비와 손권은 아직 세력을 만들만한 기반을 한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시기인지라 비옥한 형주 땅 한뼘이 서로 아쉬웠다.


후한 시기인 140년 조사한 형주 7군의 인구는 다음과 같다.


남양군南陽郡[완宛] - 37성 호구 : 528,551호 인구 : 2,439,618명

남군南郡[강릉江陵] - 17성 호구 : 162,570호 인구 : 747,604명

강하군江夏郡[서릉西陵] - 14성 호구 : 58,434호 인구 : 265,464명

영릉군零陵郡[천릉泉陵] - 13성 호구 : 212,284호 인구 : 1,001,578명

계양군桂陽郡[침郴] - 11성 호구 : 135,029호 인구 : 501,403명

무릉군武陵郡[임원臨沅] - 12성 호구 : 46,672호 인구 : 250,913명

장사군長沙郡[임상臨湘] - 13성 호구 : 255,854호 인구 : 1,059,372명


형남과 형북은 군의 수나 인구 수로 언뜻 대등하게 보인다. 하지만 수도인 낙양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형남보다는 아무래도 형북이 좀더 알짜배기 땅이다. 형북을 두고 유비, 조조, 손권은 치열하게 대립했는데 완, 강하, 양양, 강릉과 같은 대도시들이 모두 형북에 위치해있을 뿐더러 인구밀도도 높고 강이 모이는 위치라 수운의 이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조조는 형주 공략 이후 남군을 갈라 양양군을 설치하고 남군 서쪽에 임강군을 설치하고 남양군을 나눠 남향군을 설치해 형북을 6군으로 만든다. 유비는 형남 4군과 임강군을 차지하고 조조와 대치하다 익주로 들어가며, 손권은 익양대치를 통해서 유비에게 빌려주었던 형주의 일부(강하, 장사, 계양)를 돌려받는다. 결과적으로 얻으면 천하를 노릴 수 있다던 형주는 위촉오 세나라가 사이좋게(?) 나눠가지게 된다.(하지만 나중에 유비는 그조차도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