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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흐름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진(晋)이 세나라(위, 조, 한)로 분할된 이후를 흔히 전국시대라고 한다.시간순으로 전국시대의 흐름과 진(秦)의 통일 과정을 볼 수 있는 지도들. 더보기
기나라, 송나라, 전 왕조의 후예들 기(杞)나라 :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 하왕조때부터 후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았으며 우임금의 후예이다. 상(은)왕조 말기에 망했으나 주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우임금의 후예인 동루공을 찾아서 제후로 봉하였다고 한다. 소국이어서 춘추전국시대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였으나 하의 후예인지라 하례를 보존하고 있어 유가에서의 의미는 컸다. 초나라의 공격을 받아 약소국이 되었으며 기원전 445년 초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송(宋)나라 :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 무왕의 동생 희선과 희진이 관나라와 채나라의 제후로 봉해진다. 주 무왕의 사후, 이들은 상왕조의 귀족 무경과 반란을 일으키는데 토벌되어 관나라는 멸망하고 채나라는 소국으로 전락한다. 반란이 마무리된 후 상왕조 유민들은 축출되.. 더보기
금 세종 이야기 0 완안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거란족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송나라를 남천하도록 강요한 12세기의 강자였다. 서쪽의 서하, 동쪽의 고려, 남쪽의 남송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던 금나라는, 하지만 한세기의 전성기를 누리고 칭기스칸과 몽골족의 말발굽에 스러져갔다. 짧은 전성기동안 많은 인물군상들이 등장했는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치세를 다스린 왕이 금 세종이다.세종의 휘는 완안오록(完顏烏祿), 1123년 3월 29일 태조 완안아골타의 5남인 와리타(訛里朶)와 발해 귀족 출신인 추와지(雛訛只)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조 아골타가 사망하고 동생인 오걸매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이 1123년 9월 19일~9월 27일이므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금나라의 최대 팽창기이기도 하면서 혼란한 시기였.. 더보기
훈족의 이동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속시킨 민족의 대이동(Migration of Barbarian)은 우리말로 흔히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훈족(Huns)이었다. 4세기 말 볼가강의 원류에 나타난 훈족은 학계에서는 4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활동한 흉노족과 연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분포해있던 유목민족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는데 이들은 게르만족을 철저히 노략하여 이를 견디지 못한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영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433년 훈족의 왕이 된 아틸라는 군사를 일으켜 라인강변으로 영토를 넓힌다. 동로마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고 막대한 액수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황제를 굴욕적으로 굴복시켰다. 동로마를 충분히 약탈한 아틸라는 서로마제국을 침공하였는데 서고트,.. 더보기
역대 프랑스의 왕 별칭 동양에서는 왕의 사후 시호를 내려주지만 서양에는 그런게 없다. 다만 프랑스의 왕들에게는 유독 재미난 별명들이 많이 붙어있는데 이는 당대에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주거나 사후에 붙은 경우도 있는데 왕을 칭송하는 것도 있고 몰래 비난하기 위해 붙은 것도 있다. 일단 동명이인의 왕들이 많은 관계로 당대에는 1세, 2세 보다는 경건왕 루이, 말더듬이왕 루이 하는 식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메로빙거 왕조(프랑크 왕국) 의 왕들은 프랑스와 독일 등 여러나라의 공통 역사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별명이 붙은 왕이 없는 관계로 생략한다. 카롤링거 왕조(프랑크왕국)페팽3세 단구왕 751-768샤를1세(샤를마뉴 대제) 768-814루이1세 경건왕 814-840샤를2세 대머리왕 840-877루이2세 말더듬이왕 877-879루이3세 .. 더보기
아프리카의 종교 아프리카의 종교라고 하면 언뜻 전통 토속신앙일 것 같지만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 절반 가까이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토속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5%가 되지 않는다. 지리적으로 종교의 발상지인 중동지역과 가까운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종교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1세기경 전래된 초기기독교가 에티오피아 일대에 전파되었고 7세기부터 아프리카 북부 해안이 이슬람화되었으며 이후 1000년간 남쪽으로 퍼져나가 사하라 사막 이남까지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19세기 열강의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아프리카 전역이 식민지화되었고 이때까지 이슬람이 퍼지지 않은 지역은 급속하게 기독교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인 토속신앙들이 급격히 사라졌다. 현재 .. 더보기
삼국지의 형주 후한 말기 형주는 7군으로 남양군, 강하군, 남군의 형북 3군과 무릉군, 장사군, 영릉군, 계양군의 형남 4군으로 나뉘어있었다. 총 117개의 현, 읍, 후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39만9394호, 인구 626만5952명의 거대한 지역이었다. 삼국지에서 형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황건적의 난과 십상시의 난, 동탁의 난, 관도대전 등의 삼국시대 초기의 굵직한 사건들이 대부분 관중이나 하북지역에서 벌어진 덕분에 전란을 피해 인재들이 평화의 땅 형주로 향했기 때문이다. 하북과 관중의 광대한 땅을 모두 차지한 조조와 달리 유비와 손권은 아직 세력을 만들만한 기반을 한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시기인지라 비옥한 형주 땅 한뼘이 서로 아쉬웠다. 후한 시기인 140년 조사한 형주 7군의 인구는 다음과 같다. 남양.. 더보기
삼국시대, 촉오동맹은 위나라와 맞섰는가 삼국지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오나라가 촉오동맹을 깨고 여몽을 보내 형주를 급습하여 관우를 죽이는 장면이다. 적벽대전에서 위나라에 맞서며 공고해보였던 촉오동맹은 이후 이릉대전을 통해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모두 죽고 나서 제갈량의 주도 하에 휴전에 들어가고, 다시 위나라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 화살을 돌리지만 두 나라는 전과 같이 진심을 다해 협력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과연 촉나라와 오나라가 힘을 계속 합쳤으면 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대로 거대한 세 나라중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나머지 한나라를 몰아낸다는 발상은 언뜻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촉나라와 오나라의 국력은 위나라의 그것에 비할바가 못된다. 일반적으로 그려진 삼국지의 세력 판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