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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근현대사

한반도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한민족은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를 끝내고 1945년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광복을 맞이함에 있어서 아쉽게도 한국인들의 역할이 크지 못했다. 세계2차대전에 일본이 추축국으로 참전하였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연합국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은 자국인들이 이뤄낸 것이 아니라 승전국들의 선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승전국들이 조선에게 독립을 시켜주게 된 이유는 3.1 만세운동과 이후 이어진 다양한 평화적/무장 독립운동들이 그 원인이었다. 3.1 만세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들이 일본 군인과 경찰들에 의해 진압되었고 의거를 일으킨 독립투사들은 모두 투옥되었지만 그것이 실패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강점을 당했으나 독립하지 못한 류큐(오키나와)와 비교해보면 이는 자명하다. 그러하기에 8.15 해방이라는 기쁜 날도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3.1만세운동이라는 슬픈 날도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도 비슷하다.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쟁취해냈지만 민주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직접투표제로 전환을 선언한 노태우의 6.29선언이었으며, 그 후 투표를 통한 문민정부 김영삼의 당선, 그리고 국민의 정부 김영삼의 정권교체를 통해 87년부터 97년까지 10년간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민주화는 국민들이 이뤄낸 것이 아니라 12.12 쿠테타를 일으켰던 노태우와 그와 야합한 김영삼 등 몇몇 정치 지도자들의 성과거나 선물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여전히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수많은 민주화운동들은 낮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피흘리며 항쟁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부마항쟁이나 6월항쟁과 같은 무수한 민주화운동들이 있었기에 독재자들이 위협을 느끼고,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도 추진력을 받아 이땅에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부의 총칼아래 광주는 진압되었지만 그 슬픈 역사도 우리가 기억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이다. 36주년을 맞은 날씨 화창한 5월의 기념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