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사

훈족의 이동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속시킨 민족의 대이동(Migration of Barbarian)은 우리말로 흔히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훈족(Huns)이었다. 4세기 말 볼가강의 원류에 나타난 훈족은 학계에서는 4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활동한 흉노족과 연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분포해있던 유목민족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는데 이들은 게르만족을 철저히 노략하여 이를 견디지 못한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영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433년 훈족의 왕이 된 아틸라는 군사를 일으켜 라인강변으로 영토를 넓힌다. 동로마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고 막대한 액수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황제를 굴욕적으로 굴복시켰다. 동로마를 충분히 약탈한 아틸라는 서로마제국을 침공하였는데 서고트,.. 더보기
역대 프랑스의 왕 별칭 동양에서는 왕의 사후 시호를 내려주지만 서양에는 그런게 없다. 다만 프랑스의 왕들에게는 유독 재미난 별명들이 많이 붙어있는데 이는 당대에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주거나 사후에 붙은 경우도 있는데 왕을 칭송하는 것도 있고 몰래 비난하기 위해 붙은 것도 있다. 일단 동명이인의 왕들이 많은 관계로 당대에는 1세, 2세 보다는 경건왕 루이, 말더듬이왕 루이 하는 식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메로빙거 왕조(프랑크 왕국) 의 왕들은 프랑스와 독일 등 여러나라의 공통 역사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별명이 붙은 왕이 없는 관계로 생략한다. 카롤링거 왕조(프랑크왕국)페팽3세 단구왕 751-768샤를1세(샤를마뉴 대제) 768-814루이1세 경건왕 814-840샤를2세 대머리왕 840-877루이2세 말더듬이왕 877-879루이3세 .. 더보기
유럽의 패자 독일 브렉시트 논쟁을 바라보며 유럽은 언제나 통합과 분열을 반복해온 역사가 떠올랐다. 언제나 그 주체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었다. 유럽연합을 처음 주창한 것이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지만 현재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독일이다.(난민이니 안보니 하지만 사실 영국의 탈퇴 움직임에 가장 큰 이유이다.) 독일은 수차례 유럽의 패권을 노려왔고 실제로 몇차례 본격적으로 패권을 노리는 행위를 취해왔다. 게르만족은 독일의 민족이기도 하고 나라 이름(Germany)의 어원이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유럽을 이루고 있는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을 이루고 있던 민족은 그리스인과 라틴인 그리고 켈트족이었지만 국경 바깥에 살고 있던 "야만인"인 게르만족이 훈족의 침입으로 대 이동을 시작하면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 더보기
카를 5세, 프랑수아 1세, 술레이만 1세 카를 5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적통으로 결혼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나폴리, 네덜란드 일대의 영토를 상속받았으며 선거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분쟁이 시작되었고 19년간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다 분노한 카를은 군대를 보내 로마를 약탈했다. 프랑스는 이후 영국의 헨리 8세와 동맹을 맺거나 심지어 오스만의 술레이만 1세와도 동맹을 맺는 등 카를 5세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동맹상대를 찾는다. 전쟁에서는 승승장구했던 카를 5세는 카톨릭 보편제국을 주장하다가 종교개혁의 역풍을 맞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더보기
피로스 왕 연대기 (4) 마케도니아 쟁탈전 에페이로스의 왕권을 잡은 젊은 피로스는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인도에까지 원정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이 그의 사망 직후 붕괴되면서 난세가 시작되었고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들은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었는데 피로스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는 피로스를 사위로 삼았으며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꼈었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자신에게도 뛰어난 전략적 능력이 있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기원전 295년, 피로스는 암브라키아(현재의 아르타)로 수도를 옮기고 데메트리오스 1세와 전쟁을 시작한다. 피로스는 그의 아래에서 장교를 한 적도 있었고 입수스 대전에 함께 참전할만큼 사이도 좋았다. 무엇보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피로스의 매부였다. 하지만 피로스와 데메트리오스.. 더보기
피로스 왕 연대기 (3) 에페이로스 왕위 계승전 피로스는 기원전 319년 아이아케데스와 테살리아 여성인 프티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아케데스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생모인 올림피아와 사촌지간이므로 피로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육촌뻘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피로스가 두살이 되던 기원전 317년에 아이아케데스가 마케도니아로 진군한 사이 에페이로스인들은 아이아케데스를 폐위하고 마케도니아의 섭정이었던 카산드로스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피로스의 가족들은 어린 피로스를 데리고 아드리아해 동쪽 해안 왕국 일리리아의 글라우키아스 왕에게 의탁한다. 글라우키아스 왕의 부인은 베레아였는데 몰로시아 아이아키다이 왕가의 여성이었다. 아버지였던 아이아케데스는 기원전 313년 카산드로스의 지배에 지친 에페이로스인들에 의해 다시 왕으로 옹립되지만 카산드로스가 즉시 동생 필리포스에.. 더보기
올림픽의 정신 고대 올림픽의 정신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마다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제전을 열었는데, 이 중 올림피아(Olympia)의 제전은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해 기원후 393년까지 빠짐없이 293회나 지속되었다.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성격의 행사였던 올림픽은 거의 전 그리스 도시국가뿐 아니라 로마의 황제도 참석했던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고대 올림픽을 통해서 그리스인들은 육체와 정신의 단련은 물론, 국민의 단합과 통일이라는 목적을 당성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근대 올림픽의 정신 프랑스의 교육가였던 쿠베르탱은 심신이 나약해진 프랑스 젊은이들을 단련하기 위해 스포츠를 장려한다. 그는 한편 세계 청년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 스포츠를 통해 우정을 나누면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1896년 아테네에.. 더보기
예나 전투 (Battle of Jena) 예나(Jena) 전투, 혹은 예나-아우어슈테트(Jena-Auerstedt) 전투 라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당시의 프랑스 제1제국) 군이 독일(당시의 프로이센, 프러시아) 군을 격파한 결정적 전투이다.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은 프랑스 제국군에 패배하여 붕괴한다.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라인동맹이 맺어진 덕분에 프랑스의 영향력은 독일 중부까지 미치게 된다. 이에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게 된 프로이센은 위기를 느끼고, 국내의 반 나폴레옹 세력들에 힘입어, 1806년, 영국, 러시아, 스웨덴 등과 함께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한다. 전쟁은 프로이센이 라인연방에 주둔한 프랑스 군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시작된다. 프랑스는 이 요구를 묵살했고, 프로이센 군은 15만명의 병력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