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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산타클로스의 유래 성 니콜라우스(Saint Nicholas)는 현재의 터키인 소아시아 리키아 파타라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이를 모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선 활동에 사용하고, 자신은 신부가 되었다. 미라(Myra)의 주교가 죽고 마땅히 주교가 될 만한 인물이 없자, 다른 지방의 주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자 "내일 아침 가장 먼저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주교로 세워라"라는 하늘에서의 음성이 들렸고, 그 날 미라에 찾아온 니콜라우스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참배하였고, 그래서 미라의 주교가 되었다. 303년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박해하였고, 이때 니콜라우스도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 더보기
피로스 왕 연대기 (2) 배경 설명 고대 오리엔트와 소아시아, 그리스 지역의 패권은 긴 시간동안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에 있었다. 그리스 지역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베 등의 도시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의 침공에 맞서 연합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결국 분열되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진다. 이 사이 그리스의 패권은 마케도니아에 넘어간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카이로네아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손에 쥔다. 기원전 337년 겨울, 스파르타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국가들과 마케도니아는 코린토스 동맹을 맺고, 의장으로 필리포스 2세를 인정한다. 코린토스와 테베, 암브라키아의 3개 도시에는 마케도니아 군대가 주둔한다. 기원전 336.. 더보기
피로스 왕 연대기 (1) 왜 피로스인가?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는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이 벌어졌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매듭지은 자마 전투의 이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그에게 승리를 거둔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우연히 로도스 섬에서 만났다. 스키피오는 연장자인 한니발에게 경의를 표하고, 정중히 물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요. 페르시아의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선 지방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소." 스키피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두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입니까?"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우선 병법의 대가요. 그리고 숙영지 건설의 중요성을 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