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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넴-보르누 제국(Kanem-Bornu) 카넴-보르누 제국은 기원전 600년경 앗시리아에서 탈출해온 난민들이 세운 나라라는 설과 기원후 700년경 유목민족인 카넴부족이 건설한 나라라는 설이 있다. 1068년경 이슬람화되어 차드호수 유역을 1000년 가까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다스렸다. 1899년 프랑스에 의해 멸망당했다. 더보기
유럽의 패자 독일 브렉시트 논쟁을 바라보며 유럽은 언제나 통합과 분열을 반복해온 역사가 떠올랐다. 언제나 그 주체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었다. 유럽연합을 처음 주창한 것이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지만 현재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독일이다.(난민이니 안보니 하지만 사실 영국의 탈퇴 움직임에 가장 큰 이유이다.) 독일은 수차례 유럽의 패권을 노려왔고 실제로 몇차례 본격적으로 패권을 노리는 행위를 취해왔다. 게르만족은 독일의 민족이기도 하고 나라 이름(Germany)의 어원이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유럽을 이루고 있는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을 이루고 있던 민족은 그리스인과 라틴인 그리고 켈트족이었지만 국경 바깥에 살고 있던 "야만인"인 게르만족이 훈족의 침입으로 대 이동을 시작하면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 더보기
팔미라 왕국사 (4) 동방의 총독이 된 오데나투스는 점차 세력을 공고히 한다. 동방에서 할거하던 마크리아누스가 일리리아에서 황제로 추대받고 있던 아우레올루스를 치기 위해 출격해서 패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 군단들이 배반하여 오데나투스에게 항복해오기도 한다.오데나투스는 침공해온 고트족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들을 공격하는 원정을 나서기도 한다.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오데나투스는 하지만 고트족 원정에서 돌아와 조카인 매오니우스의 창에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다. 정권을 찬탈한 매오니우스는 오데나투스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던 후처, 제노비아의 칼에 죽는다.제노비아는 10살인 아들 와빌라트를 후계자로 지정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로마 원로원은 승인을 거치지 않고 동방의 지배권을 장악한 제노비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 더보기
중동 지도 모음 - 사산조 페르시아 더보기
중동의 패자들 - 이슬람 이전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웠던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는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에 문명이 발달했고 누구보다 빠른 시기에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하며 청동기를 사용한 수메르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기원전 3000년경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문명을 구사하고 있었고 우르(Ur), 우룩(Uruk), 이신(Isin), 라르사(Larsa), 라가쉬(Lagash), 시파르(Sippar), 니푸르(Nippur), 에리두(Eridu), 키쉬(Kish) 등의 도시들이 건설되어 각각의 영화를 누렸다. 기원전 2400년부터 2100년까지 악카드와 구트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우르 제3왕조가 이 지역을 석권하고 우르남무의 강력한 제국이 들어선다. 5대정도 유지된 우르 제3왕조.. 더보기
한반도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한민족은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를 끝내고 1945년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광복을 맞이함에 있어서 아쉽게도 한국인들의 역할이 크지 못했다. 세계2차대전에 일본이 추축국으로 참전하였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연합국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은 자국인들이 이뤄낸 것이 아니라 승전국들의 선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승전국들이 조선에게 독립을 시켜주게 된 이유는 3.1 만세운동과 이후 이어진 다양한 평화적/무장 독립운동들이 그 원인이었다. 3.1 만세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들이 일본 군인과 경찰들에 의해 진압되었고 의거를 일으킨 독립투사들은 모두 투옥되었지만 그것이 실패했다고 .. 더보기
카를 5세, 프랑수아 1세, 술레이만 1세 카를 5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적통으로 결혼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나폴리, 네덜란드 일대의 영토를 상속받았으며 선거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분쟁이 시작되었고 19년간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다 분노한 카를은 군대를 보내 로마를 약탈했다. 프랑스는 이후 영국의 헨리 8세와 동맹을 맺거나 심지어 오스만의 술레이만 1세와도 동맹을 맺는 등 카를 5세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동맹상대를 찾는다. 전쟁에서는 승승장구했던 카를 5세는 카톨릭 보편제국을 주장하다가 종교개혁의 역풍을 맞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더보기
피로스 왕 연대기 (4) 마케도니아 쟁탈전 에페이로스의 왕권을 잡은 젊은 피로스는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인도에까지 원정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이 그의 사망 직후 붕괴되면서 난세가 시작되었고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들은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었는데 피로스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는 피로스를 사위로 삼았으며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꼈었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자신에게도 뛰어난 전략적 능력이 있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기원전 295년, 피로스는 암브라키아(현재의 아르타)로 수도를 옮기고 데메트리오스 1세와 전쟁을 시작한다. 피로스는 그의 아래에서 장교를 한 적도 있었고 입수스 대전에 함께 참전할만큼 사이도 좋았다. 무엇보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피로스의 매부였다. 하지만 피로스와 데메트리오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