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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

팔미라 왕국사 (4) 동방의 총독이 된 오데나투스는 점차 세력을 공고히 한다. 동방에서 할거하던 마크리아누스가 일리리아에서 황제로 추대받고 있던 아우레올루스를 치기 위해 출격해서 패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 군단들이 배반하여 오데나투스에게 항복해오기도 한다.오데나투스는 침공해온 고트족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들을 공격하는 원정을 나서기도 한다.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오데나투스는 하지만 고트족 원정에서 돌아와 조카인 매오니우스의 창에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다. 정권을 찬탈한 매오니우스는 오데나투스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던 후처, 제노비아의 칼에 죽는다.제노비아는 10살인 아들 와빌라트를 후계자로 지정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로마 원로원은 승인을 거치지 않고 동방의 지배권을 장악한 제노비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 더보기
중동 지도 모음 - 사산조 페르시아 더보기
중동의 패자들 - 이슬람 이전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웠던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는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에 문명이 발달했고 누구보다 빠른 시기에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하며 청동기를 사용한 수메르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기원전 3000년경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문명을 구사하고 있었고 우르(Ur), 우룩(Uruk), 이신(Isin), 라르사(Larsa), 라가쉬(Lagash), 시파르(Sippar), 니푸르(Nippur), 에리두(Eridu), 키쉬(Kish) 등의 도시들이 건설되어 각각의 영화를 누렸다. 기원전 2400년부터 2100년까지 악카드와 구트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우르 제3왕조가 이 지역을 석권하고 우르남무의 강력한 제국이 들어선다. 5대정도 유지된 우르 제3왕조.. 더보기
팔미라 왕국사 (3)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페르시아 원정은 아주 좋은 출발을 보였다. 7만의 로마군은 연전 연승의 기세로 전쟁을 이끌었다. 안티오키아까지 쳐들어온 페르시아 군을 유프라테스 강 동쪽으로 격퇴하고 북부 메소포타미아 탈환을 눈앞에 두었다. 샤푸르 왕은 뛰어난 군주였지만, 전쟁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오데나투스는 로마군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운다. 260년, 전황은 급격하게 바뀐다. 로마군과 페르시아 군의 격렬한 전투가 페르시아의 승리로 끝나고, 황제인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힌다. 페르시아 군은 로마군을 격파한 기세로 시리아, 킬리키아, 카파도키아 등의 로마 속주를 약탈하고 다닌다. 로마는 황제가 사로잡힌 미증유의 국난에 꼼짝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 팔미라의 수장이었던 오데나투스는, 이 직후 페르시아 측에 접근한다. .. 더보기
팔미라 왕국사 (2) 다마스쿠스 북쪽 시리아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인 팔미라는 중국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육로상에 위치한 무역도시이다. 예로부터 카라반의 중계기지였던 팔미라는 로마에 편입되기 전부터 번성하고 있었으며, 주변의 나바테아왕국이 파르티아의 편에 섰다가 쇠퇴한 이후 그들을 멸망시키고 상업적인 영향력을 모두 빼앗아 간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특히 다마스쿠스와 팔미라를 집중적으로 진흥시켜서 파르티아와의 완충지대로 삼는다. 실크로드를 독점한 팔미라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이후에도 시리아 사막의 진주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하에서 팔미라는 사막 유목민족인 베두인족의 침략을 배제하여 평화로웠다. 예전같으면 팔미라에는 무인이 탄생하지 않았다. 대상이 성.. 더보기
팔미라 왕국사 (1) 3세기에 로마는 위기로 치닫는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제국의 방위선은 이민족의 말발굽 아래 무너진다. 연일 고트족이 도나우강 방위선을 넘어 제국 내를 약탈하고, 사막의 민족들은 아프리카와 동방의 도시를 위협한다. 로마의 오랜 적이었던 파르티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일어선 사산조 페르시아 왕국은 걸출한 지도자인 샤푸르 1세의 아래에서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의 부흥을 기치로 로마의 동방 방위선을 위협한다. 로마는 국내의 치안조차 살피기 어려운 상황에서 73년동안 22명의 황제가 바뀌는 내분의 시대로 돌입해 있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창건자인 아르다쉬르 1세의 아들인 샤푸르 1세는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의 부흥이라는 목적을 위해 지속적으로 로마를 공격한다. 로마 황제 필리푸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에 선제를.. 더보기
마르마리스 (Marmaris) 의 역사 마르마리스는 터키의 서남부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행정상으로는 무우라주에 속해있으며, 요트와 리조트를 위해 방문하는 관광수입이 도시의 주 수입원인 관광도시이다. 마르마리스가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상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도시의 흔적은 기원전 6세기경 카리아의 일부로서이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르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마르마리스 성은 기원전 3000년부터 존속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카리아 침공 당시 성이 포위당했고, 600여명의 주민들은 저항이나 탈출해볼 틈조차 없이 성과 함께 불살라져버렸다. 마케도니아 군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때문에 파괴된 성을 재건축하고 적은 수의 병사를 남기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마르마리스의 역사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것은 15세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