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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

팔미라 왕국사 (2)

다마스쿠스 북쪽 시리아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인 팔미라는 중국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육로상에 위치한 무역도시이다. 예로부터 카라반의 중계기지였던 팔미라는 로마에 편입되기 전부터 번성하고 있었으며, 주변의 나바테아왕국이 파르티아의 편에 섰다가 쇠퇴한 이후 그들을 멸망시키고 상업적인 영향력을 모두 빼앗아 간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특히 다마스쿠스와 팔미라를 집중적으로 진흥시켜서 파르티아와의 완충지대로 삼는다. 실크로드를 독점한 팔미라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이후에도 시리아 사막의 진주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하에서 팔미라는 사막 유목민족인 베두인족의 침략을 배제하여 평화로웠다. 예전같으면 팔미라에는 무인이 탄생하지 않았다. 대상이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3세기의 상황은 팔미라에 군사적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 나타나자, 그에게 군사를 주고 방위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다. 오데나투스의 이름은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오데나투스인데, 이로 미루어 그의 가문은 세베루스 왕조 하에서 로마 시민권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가문은 적어도 190년대부터 귀족이었다는 말이다. 오데나투스의 아버지인 헤로드는 팔미라의 원로였다.
오데나투스가 팔미라의 수장이 된 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258년에는 이미 팔미라의 수장이었으며, 제노비아와 재가한 이후였다.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동방에서 인재를 모집하였는데, 오데나투스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였다. 로마군의 주력은 창을 무기로 쓰는 중무장 보병이었는데, 팔미라군의 주력은 활을 무기로 쓰는 경무장 기병대였다. 발레리아누스는 오데나투스를 정규 사령관에 임명하고 원로원 의원만 될 수 있는 전직 집정관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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