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고대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무리한 민족사관

오마이뉴스에 뜬 기사를 보다가 조금 우려스러워서 글을 쓰게 되었다. 기사의 요지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신라를 높이기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연대를 늦추어 잡았다는 것. 

기사를 읽어보면 정말 가관이다. 백제는 고구려보다 조금 늦게 건국되었는데, 김부식이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200년정도 늦추려고 고구려 왕계를 축소하고, 조작하여 신라보다 건국 연대를 늦추었으며, 백제 역시 덩달에 건국 연대가 늦추어졌다는 것. 제목은 백제로 뽑았으나 백제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삼국사기의 "백제가 고구려 건국보다 조금 뒤에 건국되었다" 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끌어올리면 백제의 건국연대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바탕으로 고구려의 건국연대만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1.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연대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는 고구려가 건국된지 19년 후에 건국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당겨잡는다면, 이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당겨잡는 사람들은 흔히, 주몽이 세운 고구려 이전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주몽의 등장으로 통치계급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론을 따를 경우,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당겨잡아질 수 있어도, 백제의 건국 연대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2. 한서의 고구려현 기록
한서의 기원전 107년 기록에 현토군 고구려현이라는 기록이 있다. 기자는 이 고구려현이 실제로 고구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고구려는 단순히 지명일 뿐이다. 유리왕대에 이르러 고구려는 현토군의 고구려현을 공격하여 한나라로부터 빼았는다. 이 기록으로 보아도 고구려현은 국가로서의 고구려와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광개토대왕 비문의 17세손 기록
이 부분은 분명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김부식이 설령 일부 왕의 기록을 생략했다고 하더라도 이 것이 의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던 시점은 1145년인데, 무려 1200년 전의 일에 대한 기록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고대일수록 기록이 태무하고 삼국의 전란 이후라 많은 기록이 유실되었을 터이니 그도 맞는 기록을 찾아서 완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가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기록을 의도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삼국사기라는 방대한 작업에 대한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추락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의 왕중에 누락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 6대 태조대왕은 93년을 재위하였으며 119살에 서거하였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태조대왕을 잇는 것은 그의 동생들인 차대왕과 신대왕이다. 차대왕은 76세로 왕위에 올라 20년을 재위하였으며, 신대왕은 77세로 왕위에 올라 15년을 재위한다. 이쯤 되면 2-3대정도가 이 사이에 숨겨져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기자는 김부식이 세수를 조작하기 위해 부자관계를 형제로 조작했다고 하는데,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연대가 이렇게 무리해서야 이로 인해 연대도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 의도적인 것이 아닌 단순한 오기나 실수라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하다. 한편 국내 학계에서는 광개토대왕이 3대 대주류왕부터 17번째 왕이므로 '세손'은 '대손'과 다른 의미라고 해석한다.

4. 고구려 900년설
기자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불신한다면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인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고구려 900년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는 오히려 김부식이 민족사를 늘리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고구려가 900년이라면 기원전 233년이 된다. 이 시기는 고조선이 건재하던 시기로, 위만조선의 건국보다도 이전이다. 고구려가 고조선을 잇는 국가라는 사실조차도 무색해진다. "한나라때부터 나라를 가진 이래로 900년" 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되며(900년 전에는 한나라도 없었으므로), 다른 기록들과도 너무 상충하므로 이 기록은 정말 상징적인 전승, 그 이상도 이하도아니다. 이 기록은 신당서에도 나오는데, 신당서의 잘못된 기록을 삼국사기가 그대로 인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5. 북한의 고구려 기원전 277년 건국론
기자의 진위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1990년대부터 북한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 1세기가 아니라 3세기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래에는 유물들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인다. 북한도 1980년대까지는 고구려를 기원전 1세기 초 건국된 국가로 여겼는데, 1990년대에 갑자기 연대를 늘려잡았다. 이 시기에 북한은 평양에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주장하며 단군 유골의 연대가 기원전 3000년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국내 학자들은 측정방법을 불신하며 5000년된 유골의 보존상태가 좋은 것에 의문을 제기하였으나 북한의 대꾸는 없었다.

우리 민족의 자랑은 유구한 민족사이고,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지나친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가면서 민족사를 늘려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근래에 들어서 그동안 정통이라고 여겨졌던 신라의 역사를 폄훼하고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를 무리하게 미화하는 경향이 보인다. 강력한 정복제국이었던 고구려와 찬란한 해상제국 백제가 신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한국사가 반도로 한정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쓰지 않고, 이념을 우선 정하고 그 이념에 역사를 맞추어나가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찬란한 민족사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줄 수 있지만, 정확한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 되고 미래의 지침이 된다.

'한국사 > 고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담의 난  (0) 2009.11.11
남북국의 정립 (2)  (0) 2009.10.25
남북국의 정립 (1)  (0) 2009.10.18
삼한의 통일 (3)  (0) 2009.10.12
삼한의 통일 (2)  (0) 200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