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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고대사

삼한의 통일 (2)


가야 연맹을 해체/합병한 신라의 힘은 나날이 커져간다. 파죽지세의 신라를 백제는 제어하지 못한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국운을 건 침략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한수 유역을 차지한 것은 신라에게 행운이었다. 수나라는 곧 고구려 침략 실패의 후유증으로 당나라로 교체된다. 신라는 한수 유역을 통해 당나라와 직접 교류하기 시작한다.
신라와 당나라는 무열왕의 대에 이르러, 나당동맹을 맺게 된다. 백제와 고구려는 여제동맹으로 이에 맞선다. 국사책에는 동서로 나당동맹, 남북으로 여제동맹 + 돌궐, 왜 로 묘사되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지형 변화이다.
신라 무열왕은 외교의 달인이었다. 그는 여제동맹으로 신라가 위태로워진 선덕왕 시절, 당나라에 가서 태종 이세민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동맹을 이뤄낸다. 덕분에 고구려는 신흥제국 당과의 전쟁으로 여전히 신라에 간섭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신라는 백제만을 상대로 국력 신장을 계속 할 수 있게 된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온다고, 백제의 의자왕 역시 뛰어난 군주였다. 그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침략하는 틈을 타서 신라를 공격하지만 신라의 김유신에게 역습을 받아 패퇴한다.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침략이 실패로 돌아간 후, 고구려, 돌궐, 왜 등과 연합한 백제는 신라의 영토를 차츰 잠식해나간다.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에 다시금 호소한다. 결국 나당연합군은 고구려가 아닌 백제로 그 목표를 돌린다. 고구려였기에 당나라의 군사력을 막았던 것이지, 신라와만 싸워온 백제가 당나라의 군사력을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준비가 되지 않은 백제는 당나라의 13만 대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다. 6월 21일에 신라군과 당군이 합류하는데, 황산벌의 전투는 7월 9일이고, 7월 13일에 의자왕이 도망가고 그의 아들 융(隆)이 항복한다. 700년 제국의 마지막 치고는 정말 짧은 최후였다.
황망히 망해버린 백제의 잔존 세력들은 의자왕의 장남 풍(豊)을 보위하여 부흥운동을 벌이고, 왜와 고구려 등이 이를 돕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백제가 멸망한 옛 삼한의 땅에는 이제 신라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삼한의 통일은 여전히 미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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